전시안내
함(咸): Sentient Beings

 

 

김길후는 2000년대 들어서 불학에 정진했다. 당시 정각정행(正覺正行)의 요체에 대하여 어렴풋이 알았다고 한다. 정각정행은 수신(修身)의 요체(要諦)이다. 정각은 바른 자리를 깨달았다는 뜻으로 바른 자리는 유무가 아니다. 그것은 선악도 아니며, 시비도 아니다. 생사도 떠나며, 고락도 불허한다. 일체를 부인함도 아닌 자리로서, 만일 이 바른 자리를 깨닫고(覺) 보면 바른 자리가 곧 부처님의 마음자리이다. 동시에 각자의 마음자리이다. 일체중생의 근본처(根本處)이다. 이를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정행(正行)은 유무와 선악과 시비와 생사와 고락과 허무와 편벽됨이 없는 중도의 행(行)을 이름이니, 곧 집착(執著)이나 편착(偏着) 없는 원만한 행위이자 실천이다.
사유는 정각을 가리키며 작품에서 90도로 기울인 얼굴이 정각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손은 바르고 원만한 행위, 즉 정행(正行)을 상징한다. 매우 두터운 매질과 안료를 섞어 캔버스 화면에 올려서 부조의 느낌을 주었다. 회화임에도 조각적 입체감을 자아내며 인물의 표정은 매우 깊이 있다. 반짝이는 표면의 빛남은 현자만의 엑스터시를 직감하게 한다.
<사유의 손>은 2014년 베이징 화이트박스 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전시된 바 있다.

오른쪽에서 미명이 떠오르니 밝은 아침 해가 거뭇한 칠흑의 밤을 물리치고 있다. 인류사의 많은 그림의 역사와 시사(詩史)에서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길후의 <무제>는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찰나의 순간을 담고 있기에 보는 이는 통쾌한 것이다. ‘陽’이 ‘幽’를 물리치는 장면이야말로 ‘유미입진(由美入眞)’의 경지이다. 아름다움을 통해서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어진 사람[賢者]은 세파에 시달려도 무릎 꿇지 않고 언젠가 기필코 빛(진리)으로 어둠(거짓)을 물리친다. 불교의 미륵보살이 그것이며, 『주역』의 복괘(復卦)가 그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이 그것이다. 
현자는 오른쪽을 향하여 마주한다. 그윽하게 눈을 감았다. 미명은 현자의 미려한 비익(鼻翼)과 인중을 밝게 물들이며, 희열을 머금은 눈가를 비춘다. 눈가에는 눈물이 이슬처럼 영롱하다.
구유(九幽)처럼 어두운 좌측 화면은 강렬한 마티에르 효과를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자의 안면에 핏줄과 주름이 솟아있음을 감지한다. 고난과 곤경의 역사를 압축한 듯하다. 반면, 오른쪽에서 밀려드는 밝은 미명은 다가올 한낮의 빛, 즉 보조(普照)를 예견한다. 진리는 언제나 강렬한 대조를 이루어 표현되는 것이다. 작품의 마력이 여기에 있다.



 

 

Hakgojae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