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Untitled, 2022, Mixed media on canvas, 53.0 x 45.5cm
Untitled, 2022, Mixed media on canvas, 53.0 x 45.5cm
Untitled, 2022, Mixed media on canvas, 53.0 x45.5cm
Untitled, 2022, Mixed media on cnvas, 17.8 x 17.8cm
그림자-알로카시아, 2022, Mixed media on canvas, 116.8 x 91.0cm
알로카시아-그림자, 2022, Mixed media on canvas, 116.8 x 91,0cm
알로카시아-그림자, 2022, Mixed media on canvas, 116.8 x 91.0cm
알로카시아-그림자, 2022, Mixed media on canvas, 168.8_x_91.0cm
UPCOMING | 김혜성: 섬 - 거울

 

 

식물/ 그림자/물질

 

강홍구 (작가) 

 

 

1

 

김혜성이 전시를 한다. 첫 개인전이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이 김혜성은 전시와 작품에 관해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김혜성의 작품들은 주제와 소재의 명료함과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태도가 돋보인다.

김혜성의 작업의 소재는 선물로 받았다는 알로카시아라는 잎 줄기가 길다란 반려 식물이다. 작업의 계기는 우연히 주어졌지만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뚜렷하다. 먼저 대표적 작업이라 할 수 있는 50호 크기의 연작들을 보자.

밝은색으로 칠해진 캔버스에 식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차분한 관찰과 전통적 회화기법이라 할만한 그리기로 알로카시아의 특성들을 드러낸다. 어떤 것들은 좀 자세히 어떤 부분들은 가볍게 그려져 생략되어 있다. 당연한 일 이지만 묘사보다는 구성 방식이 훨씬 중요해 보인다.

그려진 잎사귀와 줄기 뒤에는 그것들이 만드는 그림자들이 있다. 그림자들은 회색 톤으로 물감이 칠해진 것들도 있고 자개나 모래가 붙여진 것도 있다. 그러니까 캔버스라는 배경, 식물 묘사, 그림자라는 세 요소가 작품을 지배한다. 이 세 요소가 김혜성의 작품의 성격을 확실히 규정 짓는다. 추상적, 구상적, 시각적, 촉각적인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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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요소들은 식물의 형태와 잎사귀를 지탱하는 가지가 이루는 선의 방향과 위치등으로 결정되고 그림자는 그에 맞춰 변화가 발생한다. 특히 자개나 모래를 붙인 그림자들은 원래 물질적 존재감이 없는 그림자에 물질성과 촉각성을 부여한다. 반사광이 별로 없는 자개들은 빛을 흡수하며 기묘하게 이질성을 극복해내며 화면에 변화와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처럼 촉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만남은 매체의 전환 혹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김혜성은 작품 제작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식물들 뒤에 캔버스를 두고 빛을 비춰 그림자와 식물의 구도와 짜임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사진 찍고 그 결과물을 캔버스에 옮긴다. 눈으로 본다는 것과 사진과 그리기와 수공적 붙이기라는 노동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혜성은 작업들은 사진이라는 시각적 매체가 수공적 과정을 통해 다시 회화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에 있던 불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되고 작품은 명료해진다. 아마도 살아오는 동안에 만나는 어려움, 기쁨, 즐거움, 괴로움등의 경험들이 집적되었다 기억 밖으로 사라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김혜성의 작업들은 어쩌면 작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화상일 것이다.

알로카시에라는 식물은 모르는 사이에 김혜성을 투사하거나 대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식물의 겉모습과 함께 그림자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 그림자는 가볍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삶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본인은 알고 있다. 때문에 그림자는 식물의 겉모습과 동등하게 혹은 그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림자는 일종의 내면이자 살아가면서 얻어 낸 지혜의 일종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지혜의 핵심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김혜성의 식물 그림들이 시사하는 바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회화란 기본적으로 물질과 작가와의 관계, 일종의 밀당의 결과물이다. 그러는 동안 캔버스는 일종의 무대가 된다. 롤랑 바르트 Roland Gérard Barthes는 그림 자체를 일종의 연극으로 간주하고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 사실, 우연, 사건, 결말, 놀라움, 행위가 일어난다고 사이 톰블리"Cy" Twombly에 관해 쓴 글에서 말한다.

그리고 그림의 재료들, 그것이 물감이든 다른 물질이든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사실로 존재하면 재료 자체가 절대적 소재가 된다고 한다.

즉 재료 자체는 사물로 남는 재료이며 재료는 의미의 분할 이전에 존재하는 원재료는 작품의 소재로 존재 하며 거기-있음에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완고한‘’ 상태로 남으려는 것이다. 이는 물론 톰블리의 경우만이 아니라 모든 회화에 해당되며 늘 작가와 재료 사이의 길항 관계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김혜성이 사용한 자개는 자개라는 물질적 재료이며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으려 한다. 김혜성은 그 자개를 부러뜨러 그림자처럼 보이게 하나씩 붙여 나간다. 재료의 저항을 작가의 의도로 길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료의 본연의 특성이 너무 손상 되면 생생함이 사라지고, 재료의 물질성만 남으면 작가의 의도는 약화 된다.

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회화, 혹은 모든 물질들을 다루는 시각 예술의 핵심이 된다. 김혜성의 작품에서 흥미 있는 지점은 자개라는 물질성등을 통해 경험적 상식을 역전 시키는 데 있다. 대개 그림자는 부수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인식 되는 데 이것을 자개라는 물질로 전환 시키고 그려진 그림자와의 대비를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3

 

김혜성의 또 다른 작업인 작은 드로잉들과 흙으로 구운 작업들은 취향의 실험이다. 작은 샤알레를 연상시키는 캔버스들에는 이미지들이 배양된다. 그 이미지들은 김환기의 영향을 받는 점 찍기, 다른 드로잉의 연장선인 누드, 식물들과 꼴라쥬들이 일기처럼 집적 되어 있다. 그것들은 솔직한 작업의 과정과 작업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감춘다. 마치 접시 위에 놓은 디저트 과자들을 맛보듯이 하나하나 읽어보아야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혜성이 최근 시도하고 있는 속옷 시리즈들은 식물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의미가 확산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식물보다는 훨씬 직접적이며 사적인 대상인 속옷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고 식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획득된 기법을 더 세련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그 작업들이 앞으로 가볍고 날렵한 방식 이상의 깊이와 보는 이들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얼마나 던져주는가에 달려 있다.

 

글의 처음에도 말했지만 김혜성의 작업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명료하게 정리 되어 있다. 이는 중요한 장점이면서 동시에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기법의 완결되고 방법을 터득해서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는 순간이 매너리즘이 시작되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일정한 규칙과 패턴을 가지고 잎을 내밀고,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는다. 그러나 그 모든 잎과, 가지와, 뿌리와 열매들은 모두 다르다. 아마 그것이 작가들이 식물에게 배울 수 있는 작업의 태도가 아닐까?

다시 바르트를 인용 하자면 예술가의 작품이란 예술가의 머리 속 혹은 손에서 이전 혹은 동시대의 텍스트들이 순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르트가 지적하는 바는 어떤 작가의 작품도 역사와 문화적 구조의 산물이고 그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변성이라는 의미이다. 김혜성의 작업 역시 거대한 문화적 맥락이라는 줄기에서 서로 다른 잎과 꽃들을 다양하게 피워내는 식물의 일부이다. 그리고 작가가 할 일은 자신이 기른 식물이 어느 위치에 어떤 상태로 자라고 있는 가를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작가노트

 

 

 

1.


머물 수 없지만

바라볼 수 있어서 위로가 되는 곳

2.
흘러가는 것들.
죽어가는 것들.
살아나는 것들.

슬픔은 
삶을 정화하고,
근원적인 것으로 이끄는 
힘과 의미를 부여한다.
박제된 절망의 껍질을 녹여내고 
여린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는 비명처럼 슬픔을 꿈꾼다.





김혜성 Kim Heasung


서울에서 태어나 청운초등학교, 배화여중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압하였다.
2021년 “현대이후 현대미술의 이해(무창포 미술관, 보령)”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