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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는 결코 태양만 바라보지 않았다

한희송 | Solo Exhibition 

 

 

 

나의 친구인 한희송 작가는 현실을 긍정도 부정도하지 않는다. ‘현실’은 살아있고,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다.

한희송 작가의 첫 개인전은 1993년도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식민치하에서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갔던 ‘종군위안부 전’이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문제를 이슈화 한 첫 작품전이라 기억한다.

약자의 역사가 그러하듯 반백년 동안 숨죽이며 질식한 상태로 살아왔던 ‘일본군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아무런 기록이 없었을 때였다. 이 땅의 어머니, 여성이 유린당한 역사에 어떤 소리라도 내야한다는 최소한의 양심 이였으리라. 1991년 일본군 위안부로 자신의 삶을 역사 수면 위로 드러낸 최초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의 매듭진 삶에 온 맘을 저려하며 한희송 작가는 한 분 두 분 할머니들을 만났다. 1992년 1월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를 시작으로 할머니들 살아온 생에 함께 소리치고 울고 끌어안으며 시간을 함께 했다.

1993년 ‘종군위안부전’(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전은 ‘당한’ 자의 억울함이 반백년 지나서야 나온 그 분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함께 알릴 수 있는 작가 한희송의 실천이었다. 한 인간의 삶을 산산조각 낸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고도 국제사회에서 뻔뻔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일본의 역사성을 고발하는 당시 민중미술작가도 아닌, 그저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호흡하는 한 인간 한희송 ‘다운’ 작업이었다.

빈켈만의 "역사를 다시 쓰지 말라" 는 명제가 있다. 한희송 작가에게 역사는 다시 써야 할 이유가 있는 서사다. 1992년 [종군위안부전]은 짖눌린 침묵의 절절한 울림을 승리한 자가 님긴 역사의 여백에 켜켜 채운 고발전 이었다. 그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자로 몫을 해야 할 시중(時中)의 ‘화(和)’ 였다. 젊은 시절 한희송 작가의 양심(良心) 이었다.

이후 그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 속 방황, 펄떡였던 의지가 거제 되어가는 무기력의 늪. 노숙자에 가까운 절망적 시간. 참으로 다행이었다. 캄캄한 절망 속에서 그가 자기존재 의미였던 사랑하는 딸과 순수했던 어린 청년시절 부둥켜 앉았던 꿈의 빛을 보았다. 두껍고 투박한 껍질에 싸여 숨소리조차 느낄 수 없었던 친구 한희송이 다시 붓을 잡은 건, 그의 속세 안부를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던 친구들에게 선물이었다. 송두리째 자신을 날려 버려야 했던 시간이 만든 결.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 있는 일상. 그것의 외연확장. 한희송 작가는 2011년 개인전(인사이트센터)을 통해 조각났던 일상의 의미를 풍경과 정물에 담아 세상에 선물했다.

그 이후에 서울 태생인 한희송 작가는 더욱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홀연히 ‘자발적 유배지’라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내려가 시골에 농가창고를 임대 얻어 작업에만 몰두하였다. 홀로, 살아야 (내)할 이유. 그렇게 10년 칩거.

올 해. 자칭 유배지라 한 그의 제주도 작업실에서 만난 채운 시간, 그 여백이 고스란히 ‘채운’ 작품 해바라기. 하! 놀라움 이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두터운 물감의 터치. 묵직한 붓의 힘. 절제된 드러냄. 겸손인가? 억제인가? 작가의 붓 길이 어떠했을지 모르나 이 감동은 무엇인가!

‘[해바라기] 고호가 빈곤 속의 풍요를 꿈꾸는 형상으로 해바라기를 드러났다면, 내 친구 한희송의 [해바라기]는 풍요가 흘러 만나는 가난. 허나 가난이 빈곤의 일상이 아니라는 희망을 씨앗으로 심었다. 감동이었다. 떠밀리고 내쳐진 세상시간의 파도에서 누덕누덕 뒤틀리고 구멍 난 삶의 결은 그의 자화상 이었다.
 
자신이 꺼버리지 않는 한, 살아야 저 마다의 이유가 있다. 잎이 떨어지고 고개 숙인 누런색의 해바라기. 푸근 하늘 아래 땡 빛 받으며 영글어야 할 의미. 그렇구나. 그래! 살아내자. 살아있다. 살 수 있다. 피면 지는 건데. 지면 다시 피고.

코로나 근심 걱정에 멈췄던 숨이 내 뿜어 진다. 내 친구 한희송 작가의 작품이 내뿜는 호흡이 청량하다. 그 ‘숨’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쉬면 좋겠다. 



홍익대학교 서양화전공 신국남   






작가노트


꽃,돌,구름,하늘 네가지만 화면에 등장시켰다
기존의식의 반대편의식을 끌어내 표현한 작품이다.
가장 중심의 해바라기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

두 번째인 "돌" - 변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화면에 등장시켰으며
세 번째인 "구름" - 변화와 자유를 의미함에 화면에 등장시켰으며
네 번째인 "하늘" - 모든것을 품는 무한의 세계를 담았다.
첫 번째인 "해바라기" - 싱싱하지 않지만 씨를 한껏 품고 있는것으로 표현하였다.

- 어느 평론가가 (" 왜? 시들은 해바라기를 그렸는가?") - 물었다
 나의 대답은 - 싱신한 해바라기는"다양한 물성 변화의 느낌 " 등이 부족해서라 -답했다
여기서 다양한 물성의 변화라 함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비,바람,먼지,벌레 등등의 시간속에서 빛 바래고 뒤틀리는 과정속에서 변화 무쌍한 형태와 풍부한 색채들이 아주 흥미로웠다.
감성과 시각을 바꾸어서 앞에서 이야기한 다양하고 풍부한 요소들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다 .

-나의 작품에서는 해바라기 꽃은 인간을 빗대었다
많으니 시간을 지나오면서 비,바람,먼지,벌레,뜨거운 햇빛등의 과정에서 묵묵히 버티고 버텨서 많은 씨앗을 품고 쓰러져지는 해바라기를 인간 그 자체라 생각하며 작품화 한것이다.

이 본작품은 "8장 화면과 24송이"로 그렸으며 제일 중요한 점은 해바라기에 비추어진 빛의 방향과 돌,구름에 비추어진 빛의 방향을 다르게 표현 되어진 점을 눈치 챌수 있을것이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의문점을 갖을수 있는 점이다.


태어난 생명들이 호흡을 시작하며 태동의 순간의 사작은 " 순수 그 자체" 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태어난 세상 만물들은 존중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
허나 인생은 점점 달라진다.
성장하면서 순수함과 흥미로움과 두려움과 아름다움을 느껴가며 풍요로움과 다양함에 놀라고 희망과 좌절 , 사랑과 배신 가난과 부유함 , 탐욕과 부조리 , 종교간의 전쟁 , 마약, 폭력, 테러, 생명의 겸시 , 집단이기주의 등등의 인간삶을,저해하고 , 피박하며 , 경시하며 천대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와 반항하면서 당당히 존재하는 인간을 작품화 한것이다

-2008년 부터 지금까지 내 작품에서 특징 중에서 화면을 메꾸지 않고 싸인을 명기했다. 명기했다는 것은 완성을 의미한다
빈곳의 의미는 "비움 =여유=자유=배려=충만=존중=자연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망과 고독은 늘 나름 감싸고 숨을 쉬며 함께 하고 있다.
이쯤에서 절망과 고독을 즐기며 나의 열정과 꿈을 펼침에 있어서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더불어 갖고 작업에 집중중이다.

인생(LIFE) 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축제인것이다.
고로나는 축제의 당사자이다.
세상의 많은것들을 느끼고 사유하고 표현할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서울태생

중앙대학교 서양화전공

2021  학고재 아트센터 (4회)

2019  연홍미술관 (3회 개인전)  

 

2011  인사아트센터 5F (2회 개인전)
       국제 현대 미술재 (제주도 문예회관)                                                                   
       러시아 로마갤러리 작품 소장  

 


1993  대한민국 최초 종군위안부전(1회개인전)
       국회의원회관 (초대전)
       조선대학교 (초대전)
                                                                                                                                                                                                    
        다수의 그룹전 참가




   현재 제주에서 8년째 작업 中